성수동 수제화 타운 (www.ssst.co.kr) 작업지시서

성수동 수제화 타운 (www.ssst.co.kr) 작업지시서

 

구두산업은 100% 기계 제작이 불가능해 사람의 손이 많이 갈수밖에 없다. 매장에서 고객의 치수를 작업지시서에 적어 보내면 일주일 이내에 성수동 공장에서 제작이 가능하다.



비회원
기타 2013.02.28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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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입점기업 실비제화 갑피_이종천 (1952년생) 경력 43년

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입점기업 실비제화  갑피_이종천 (1952년생) 경력 43년

 

“내가 하견습 시절에는 주로 칼만 갈았었지요. 일을 배우면서 선배들 에게 망치 손잡이로 맞기도 했어요. 망치는 미국 서부의 총잡이가 권총을 돌리듯 각자 돌리는 방법이 있답니다”

 

갑피는 구두의 윗부분이다. 소재는 가죽이 가장 많이 쓰이고, 종류나 가공법에 따라 다양한 문양과 색상, 재질감을 갖고 있어서 기능성뿐 아니라 미적인 만족도를 높여준다. 디자인, 패턴, 재단, 조립이 갑피의 공정에 해당한다.

 

이종천씨의 고향은 제주도다. 작은 아버지가 구두 계통에 종사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구두를 배웠다. 17살 때 대흥
양화점에서 시작했는데, 제주도에 있던 40개 정도의 양화점에서 두 번째로 큰 곳이었다. 대흥에서 알던 분 연락
으로 서울 종로 세운상가 인근 성덕양화점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견습은 주로 칼만 갈았다. ‘칼 몇 년 갈았냐?’ 가
연차를 의미했다. “하견습 시절에는 풀칠, 칼갈이, 가죽깎는 일을 주로 했고, 중견습이 돼서는 테이핑과 접음질, 도
리치는 것을 배웠어요. 상견습은 중창 자르고, 마도매라고 조립을 했고, 미싱을 타면 이제 선생이 되는 거지요. 선
생이 되면 하견습, 중견습을 데리고 다니지요.” 상견습은당시 공무원 월급보다 2~3배 많이 받았다. 작업장은 험했
지만 퇴근할 때는 명동신사가 따로 없었다. 미싱은 기술을 제대로 익히는데 6~7년이 걸렸는데. 옛날 미싱은 발과 동
시에 움직여야 하니까 시일이 많이 걸렸다. “20살 때 상견습을 떼고 ‘선생’(갑피사)으로 떨어졌어요. 어린 나이에 된
거지요. 한창 때는 집에 본내는 종이와 골을 갖고 가서 그림 그리고 잘라서 맞춰보고 그랬어요” 첫 패턴으로 부츠를
만들어 신었다. 부츠는 돈 꽤나 들었기 때문에 아무나 신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989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하기도 했다. 내 신발, 실비라는 이름을 놓고 파는 자부심으로 구두 일을 계속하고 있다.

 

실비제화(실비콜렉션 대표 : 이종천) 

 

비회원
수제화장인 2013.02.2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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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 입점기업 명장 저부_김명식 (1942년생, 해원제화 기술자) 경력 57년

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 명장 저부_김명식 (1942년생, 해원제화 기술자) 경력 57년

 

 

“5.16직후 김종필씨가 이태리에 가서 구두를 하나 신고 왔는데 그 구두가 대유행을 쳤지요. 국무총리 구두라고, 당시 톱스타인 신성일, 박노식이 와서 맞춰가고 그랬어요”

 

저부는 신발의 바닥면이다. 갑피에 겉창과 중창과 굽부착 작업을 진행한다.

 

올해로 구두경력 57년인 김명식씨가 고향 정읍을 떠날 때 나이가 13살이었다. 6.25 후라 먹고 살기 힘들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구두와의 인연은 우연이었다. 전차를 잘못타서 효자동 종점에 내렸는데 배가 고파서 요기를 할 곳을 찾게 되었다. 빵집인 줄 알고 들어간 복덕방에서 주인의 동생이 일하는 양화점을 소개받았다.
전후 명동에는 양화점이 세 곳이었다. 칠성제화, 황태자 양화점, 상해 양화점, 당시는 자제가 귀해 가죽 하나 놓고 신발을 만드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기술자들이 대우받는 시절이었다. 구두기술자들은 인력거나 시발택시(군용 지프를 개조해 만든 택시)를 타고 다닐 정도로 벌
이가 좋았다. 하지만 견습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때만해도 손으로 광을 냈으니까, 처음 가서는 찹쌀로 풀 쑤고, 제화용 실을 꼬고 칼 갈아놓고, 어깨 너머로 기술배우면서 공장에서 자고 먹고 하면서, 벌이라고 해봐야 선생이 한 달에 한 번 머리 깎으라고 돈 주는 정도지” 그도 당시엔 기술자가 없어서 하견습에서 상견습까지 빨리 올라갔다고 한다. 버스 안내원이 있던 시절이 구두 경기가 제일 좋았다고 한다. 특히 롱 부츠가 인기였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학생 골프화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었다. 서대문에 있던 금강이 명동으로 오면서 서울 의 구두업계 양대 산맥을 구축했다. 칠성제화의 22년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성수동 저부 분야에서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김 장인은 "신발 이게 굉장히 공이 많이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막 신으니까 모르지 말도 못하게 많이 들어가요..." 

 

13살 때 구두제작을 시작한 후 평생 한시도 가죽을 놓은 적 없는 거친 손.

우리나라 구두제작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비회원
수제화장인 2013.02.28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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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 조한호 (1945년생, J.N.라스트연구실 대표)경력 52년

성수수제화타운(www.ssst.co.kr) 조한호 (1945년생, J.N.라스트연구실 대표)경력 52년

 

 

“나보고 라스트 전문이라고 하는데 갑피, 저부 거쳐서 마지막 간 게 라스트거든. 그러니까 라스트 전문이 아니라 구두가 전문이지”

 

라스트는 구두의 뼈대로 ‘구두골’ 또는 ‘화형’이라고 한다 . 영어의 고어인 ‘laest’에서 온 말로 ‘발자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신발의 치수와 형태를 결정 짓는다. 발은 해부학적으로 52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으며 60개의 관절과 38개의 근육, 214개의 인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발의 형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라스트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 발 건강에 적합한 디자인과 패턴이 가능하다.

 

조한호 대표의 구두입문은 15살 때 칠성제화에서 였다. “일을 배우러 간 게 아니라 밥을 얻어먹으러 간 것” 으로 그만큼 배고픈 시절이었다. “울산이 고향인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창신동 외삼촌 집으로 올라와서 이 일을 배웠지요. 이 일이 아니면 굶게되니까 매달리게 되었고, 워
낙 부지런한 성향이라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매달렸지.” 계명제화를 거쳐 금강제화 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1969년 서울. 경인지방 기능경기 대회에서 입상했다.
당시 KBS에서 나와 취재할 정도로 비중 있는 대회였다. 트렉스타에서 기술이사로 5년 근무하고 퇴직 후 1년 정도 쉬다가 라스트 연구실을 열었다. “라스트를 발이라고 생각해야 되는데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만드니까 착오가 생기는 겁니다. 신발 속으로 발이 들어가서 앉을 자리를 먼저 생각하고 장식을 생각해야 하는데 요즘 젊은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반대로 진행 하니까 눈으로 보기는 좋은데 발이 망가지지요.” 조한호씨가 라스트를 하게 된 이유는 구두를 제작 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작업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결과 현재 성수동에서 라스트 분야의 전문가로 통하고있다.

 

 

비회원
수제화장인 2013.02.2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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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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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수제화 2013.02.2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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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13 수제화 기능교육 오리엔테이션 (by 성수 수제화 타운)

 

 

 2013년 2울 13일 오전 서울 성동구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양영수 장인이 수제화 기능교육을 하고 있다. 6월말까지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20명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제화기능교육 프로그램은 국내최고의 강사진에 의해 이론수업과 함께 제화의 기초과정부터 갑피, 저부의 전문 과정으로 진행된다. 지역의 전통산업인 성수동 수제화 산업을 계승하기 위한 이번 교육에는 특히 프랑스에서 신발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J씨(24,여)가 수강에 참여해 성수동 수제화의 국제적인 유명세를 입증했다.

 

프랑스에서 매출 4억~5억원 규모의 신발 매장을 운영하는 장 보스코(25)는 지난 1월 서울을 찾았다.

K팝 열풍이 일면서 한국과도 거래를 트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홍대앞과 동대문 등을 다니며 한국 신발의 디자인과 질을 살피던 중 서울 성동구 수제화타운에서 무료 ‘제화기능교육’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수동 수제화 브랜드에도 관심이 있던 그는 성동구청을 찾아 제화기능교육에 접수했고 경쟁률 2 대 1의 면접을 통과했다.
 
성동구는 지난해부터 지역 전통산업인 성수동 제화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료 제화기능교육을 실시해 왔다. 30~45년 경력의 성동구 수제화 장인 10여명이 자원봉사로 6개월간 수업을 진행한다. 칼갈기와 기계 사용법 등 기초 과정부터 구두의 겉가죽과 밑창 다루는 법까지 수제화 제작 전 과정을 가르친다.
 

외국인 참여자인 보스코는 아이러브슈즈 웹사이트(www.iloveshoes.org)에서 제화기능교육을 확인하고, 4월까지인 비자를 교육기간에 맞춰 6월까지로 연장키로 했다. 그는 “최근 프랑스 등 유럽에서 한국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어서, 성수동 구두 등 질 좋은 한국 신발을 가져다 판매하면 좋을 것 같다”며 “사업 교류를 넘어서 제대로 된 제화기술도 전수받고 싶다”고 말했다.

 

 

 

성동구청 인사말씀

 

성동제화협회 안내

오리엔테이션

 

 

 

 

 

 

 

 

 

 

 

 

 

 

 

 

 

 

SSST 대표 이세형님

 

SSST에서는 전국대리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문의 : 박동희 성수제화협회 회장, dhpark@ssst.co.kr 또는 010-2909-7265

 

 

비회원
수제화학교(Shoe_School) 2013.02.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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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구두가게 이야기 (6) 스타일의 기원 (by 성수동 수제화 타운 www.ss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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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구두가게 이야기 (5) 내 진짜 사이즈 (by 성수동 수제화 타운 www.ss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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